민주당의 정동영은 대선을 앞두고 말실수를 했다. 남의 글을 인용했다지만 그런 변명이 통할리 없었고, 새누리당은 선거운동에 세대간 갈등을 부추키며 투표를 호소하는데 세대간 대결구도를 이용했다.

세대별 특징으로는 사상 최초로 20-30 세대의 수가 40-50 세대보다 적어 졌다는 점인데, 전체 수도 적으면서 투표율도 적었으므로 절대적인 수로 따져보면 더블스코어에 가까운 꽤나 큰 차이가 나게 됨을 알 수 있다. 20대가 60%넘게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50대가 같은 비율인 60%로 박근혜를 지지하면, 실제 결과는 상당히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데 거기에 50대의 투표율이 89.9%에 이르면서 20대의 65%랑은 비교가 안될 만큼 압도적 차이를 냈다.

따로 놓고 보면 20대의 65%가량은 나름 선방한 투표율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연령대가 고르게 투표율이 올라간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부족해 보이는 수치다. 특히 50대의 89.9%라는 엄청난 투표율은 피치못할 상황에 있는 일부를 제외한 전국의 거의모든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출구조사지만 사실상 거의 정확한 수치로 이해할 수 있다. 이유는 방송3사의 출구조사가 매우 정확했으므로 연령별 투표율 역시 상당한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지역갈등의 악몽은 연장되었다.

이번 대선에서 호남과 영남의 지역 갈등이 표로 연결되는 구도는 여전했다. 지역갈등의 주요원인은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이었고, 이 부분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지역구도는 그 생명을 이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박근혜 당선인이 당선됨으로서 지역구도는 해소되기는커녕 다시금 불씨를 지피게 되었다. 양측의 첨예한 대립은 이젠 어떤 해법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두터운 벽을 쌓아 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제 아무리 높고 두터운 벽으로 가로 막혀 있다 하더라도 세월의 힘 앞에서는 무력하다. 다시 말해 과거의 지역갈등의 원인을 제대로 정리하던가 아니면 지역구도와 관계가 덜 한 인물이 당선되어 세월이 지나는게 약이라는 말인데 박근혜라는 지역구도의 대표성을 갖는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서 박정희 시대 이후 현재까지 한국의 선진화를 막는 지역구도의 악몽은 되풀이 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는 박근혜 당선인이 정치를 잘하고 못하느냐를 떠나서의 문제이며 박정희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지역갈등은 계속 될 확율이 높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래서 필자는 가장 이상적인 지역갈등 해소의 방법으로 지역구도와 전혀 동떨어진 뛰어난 인물이 두어번 집권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지역구도의 해소보다 당장 내앞의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투표로 말해줬다.

앞으로가 더 문제

1990년대 초부터 급격히 출산율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95년부터는 1.5이하로 떨어졌고 다시 2천년대 들어서는 1.1 수준까지 내려가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금의 만20세로 투표권을 갖는 젊은이들은 이런 저출산 시대의 시작점에 서 있는 세대이다.. 그리고 그들은 미래를 향해 한발자국 내딛으려 하는 순간 자신의 결정이 아닌 남의 결정에 따르게 되고 말았다. 선두가 길을 잘못 들으니 뒤에 따라가는 세대는 허둥지둥 댈 수 밖에 없다. 문제가 심각하면 그 문제를 바꿀 수 있는 힘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너무 수가 적다 보니 힘이 모이기 어렵다. 같은 이유로 다시 5년,10년 후가 되면 새내기 유권자의 수 역시 점점 줄어들 것이다. 출산율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회복에 대한 기약도 할 수 없다.

미래 세대의 부담, 어느정도껏이어야지

지금 한국의 주류가 만들어 내고 있는 문제를 미래세대로 미루고 있는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부담으로 현재 30대 후반정도까지는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없지만 현재 기준으로 30대 이하로는 먼 훗날 지금의 수익율이 지켜지리란 보장이 없다. 이 역시 인구율 변화가 원인이다. 또한 이명박정부 들어 급증한 나라빚은 앞으로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해결이 어렵다. 빚을 내 경기를 활성화 시키려 했지만 그 혜택은 서민들에게 가지 않고 건설업자에게 갔다. 나라빚은 그냥 세월가면 저절로 없어지는게 아니므로 누군가는 갚아야 하는데 박근혜의 공약은 부자증세에 부정적이면서 서민을 위한다는 모순된 논리를 갖고 있으므로 해결책이 될수 없다. 결국 필자가 제시하는 두가지 해법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MB가 주장한바 있던 747공약이 현실화 되든지 아니면 빚을 줄이기보다 추가적인 재정집행으로 약간의 나라빚의 증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예산을 예정대로 집행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두번째로 갈 확율이 높아 보인다. 현 세대가 있기에 후손들도 있는 것이므로 경제발전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이어가는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정도가 과해서는 안되는데, 정확히 2012년의 현재가 과한 정도가 극에 이르른 시점인듯 싶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만큼 빛 보다는 그림자가 과하게 첩첩히 쌓여 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원자력 발전은 싼 전기를 산업현장과 가정에 제공해 줌으로서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지대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현재도 원자력은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폐기물이 결국은 미래세대의 부담이 된다는 것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알고는 있지만 체감되지 않다 보니 해결책이 담긴 더 나은 대안을 찾는 것은 내일이 아니라 여기게 된다. 결국 이 또한 지금의 20대가 몇십년후에 책임지는 위치에 섰을 때 해결해야할 문제로 넘어간다. 이 밖에도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현재의 어려움에 뒷전으로 밀려나 후세대의 부담으로 은근슬쩍 넘어가고 있다.

강한 대통령은 변명일뿐

50대는 박근혜가 퍼스트레이디였던 시절에 10대를 보낸 사람들이다. 강한 대통령이 나라안보와 경제부흥을 할 수 있을 거라는게 지지의 주된 이유이다. 왜 지지하느냐고 물어 보면 박정희의 이름이 나오고 잘 할것 같냐는 질문에는 강한 리더쉽이 있으므로 잘 할거라 말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슈퍼맨이 아니다. 가능한게 있고 아닌게 있다. 세계경제의 침체기가 이어지고 미국은 그런 고통을 이미 겪으면서 많은 국민들이 오랜기간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그 고통을 최대한 다 같이 나누자고 주장하는 대통령을 선출했다. 반면에 한국은 그 반대의 선택을 했다. 강한 지도자가 경제발전을 주도하면 서민들의 어려움이 해소될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 70~80년대 때나 통하던 논리이다. 박근혜 당선자가 강한 리더쉽보다는 조화로운 리더쉽을 보였으면 하는 바램을 갖는 이유는 강한리더쉽이 통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50대는 이렇게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로 드러냈는데, 20대는 뒤로 숨었다. 65%안에 해당하는 20대는 투표로 의사를 표명했지만 너무나 많은 나머지 사람들은 놀러가거나 의사표명을 하지 않음으로서 자기들의 권리를 잃어 버렸다. 앞으로 적어도 20~30년간은 점점 젊은 사람들이(지금의 20대) 힘들어 지는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고령화 시대를 넘어 초고령화로 평균연령 80세가 이미 넘어섰고 앞으로 멀지 않은 후에 90세도 넘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저출산 시대의 당사자들이 이제 성인이 갓 되어 세상에 나올 시기가 도래 한 것이다. 지금의 40세 전후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IMF사태를 맞았다. 그 때의 후유증은 인생의 방향마저 틀게 만들었고 지금까지의 삶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선택은 20대의 미래에 두고두고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20대는 이번 멋모르고 안한 이번 선거로 인해 두고두고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 50대가 바라는 세상에 자신들의 권리를 많은 부분 희생당한 것이다. 모든 일에는 균형이 중요한 법인데 균형을 잃은 투표율이었다는 점을 주장하며 글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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